[오현세 칼럼] 명(名) 판결, 명(明) 판결

    칼럼 / 오현세 / 2014-11-04 14: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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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명(名) 판결이라면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그처럼 시비곡직을 명확히 가리는 판결이라면 명(明) 판결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명(明)은 “밝을 명”으로 읽는다. 당연히 그 뜻은 “밝다”다. 인간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조그마한 모닥불이 고작이었던 시절부터 전기를 이용해 빛을 만들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밝음”을 가리키는데 해(日)와 달(月)에 비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해와 달을 합쳐 ‘밝음“을 뜻하는 글자를 만들었다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말의 의심도 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해가 밝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달도 밝은가? 달은 발광체가 아니다. 크긴 하지만 지구상에 굴러다니는 돌덩어리와 본질적으로 바를 바 없는 하나의 광석일 뿐이다. 밤이 되면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인 이 돌덩이가 어찌 “밝다”의 대표가 되어 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가? 이런 의심이 들었다면 당신은 사물의 이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 그 의심은 어떻게 푸나? 밤하늘에 달이 밝으니 밝다고 생각한 것뿐이라고 답을 내렸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그 글자를 만든 사람들이 달은 햇빛을 반사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모를 만큼 무지했다는 생각에 동의한 것이 된다.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 그러한 생각은 진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 발견된 갑골문은 밝을 명(明)은 해와 달을 합친 글자가 아니라 창문 경(冏)과 달을 합친 문자임을 밝히고 있다. 창문 경이 간략화 되면서 후대 사람들이 진짜 모습을 잊은 것이다. 어두운 밤, 창문에 비친 환한 달빛. 그것이 옛사람이 생각한 ‘밝음’이었다. 비교할 것 없는 해의 밝음이 아니라 캄캄한 밤, 밝음이라고는 오직 달빛이 걸린 격자무늬 창 밖에 없음에서 밝음을 본 옛사람들의 감성이 감동스럽고 그들이 무지했을 지도 모르다고 오해한 것이 크게 부끄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명(明)자의 기원을 따지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밝음”은 해와 달이 합쳐진 글자라는 잘못된 관념에 추호의 의심도 해 본 적 없는, 그래서 그로부터 연유하는 모든 사고가 출발부터 잘못되었을 수 있음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우리들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오류에 관한 것이다. 밝음이 해와 달이라면 달이 발광체여야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과학적 진실이 틀려야한다는 지극히 자명한 논리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놀라운가. 그러나 이 놀라움도 이러한 절대로 “틀림”을 확고한 “옳음”의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대한문 시위 집회 사건에 대해 두 법원이 각각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서울 중앙지법 형사 38부는 작년 시위 주동자들에게 유죄를 판결하며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엊그제 형사 11단독 우인성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두 법원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면 그 판결은 명(名) 판결, 창문 경과 달이 합쳐진 명(明) 판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두 법원이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으니 필경 밝음의 달 부분에는 둘 다 이의가 없으나 다른 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한 쪽이 창문경(冏)이 아니라 해 일(日)로 해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두 판결 모두 자신의 믿음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소신의 결과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소신이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민초는 어이하나. 명(明) 판결보다 오로지 이름에만 신경을 쓴 명(名) 판결을 내리고자 한 것이 아닌 지 몹시 걱정스럽다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내 맘 속에 법을 기피하고픈 생각이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법은 어둔 바다에 등대와 같아서 안전한 귀항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는데 이런 생각이 드니 기가 막히다. 그러나 보자. 하나의 사안에 두 개의 정반대 판결이라면 하나는 안전한 항로를 인도하는데 다른 하나는 암초로 인도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둘 가운데 올바른 등대를 각자 알아서 구별하라고 한다면 등대는 뭐 하러 있는가?

    나는 어느 법원의 판결인 진실인지 판단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법이 국민에게 판결을 선택하도록 하는 짓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맞는 판결이든 틀린 판결이든 일단 하나만 있으면 최소한 기준은 되지 않겠는가. 틀린 기준을 믿다가 함께 난파한다면 운이 나쁘다고 체념이나 하지, 둘 중 하나를 골랐는데 나만 잘못된 것을 골랐다면 이 억울함은 누가 풀어 준단 말인가. 아테네의 정치가 클레온이 이렇게 말했다. “악법이라도 변함없이 유지하는 나라가 좋은 법을 불안정하게 운용하는 나라보다 낫다.”

    법원은 일관됨으로 국민의 지침이 되는 명(明) 판결을 내리는 곳이라는 믿음에 금이 가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정말 좋아지고 있는 것인 지 정말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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