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 시상수 지부장

재난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소방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1973년부터 법으로 의무화되어 시행되고 있는 민간소방 예방의 한축인 자위소방대는 여전히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자위소방대가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실제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작금의 첨단 디지털 기술과 전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 소방력, 그리고 신속한 대응의 중요성이 커지는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오래되고 비효율적인 자위소방대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까?

자위소방대는 화재 초기 신속한 대응을 위해 일본 법제를 참고하여 조직된 민간조직으로,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화재통보, 초기소화와 피난유도 등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화재는 복잡한 물리적, 화학적 과정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이 번져, 몇 분만 지연되어도 작은 사고가 재앙으로 바뀔 수 있다. 

 

위계적 구조를 가진 자위소방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민첩하지 않아 국가 소방력이 도착하여도 동원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뒤늦게 작동된 자위소방대가 국가 소방력에 의한 화재진압에 장애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이런 자위소방대의 문제점을 안은 채 2014년 경비원, 근무자 등으로 초기대응체계를 구축하여 자위소방대 내에 두도록 하여, 소방안전관리자 부재 시 이를 대신토록 입법화 하였으나, 이 또한 실제 화재 상황에서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자위소방대 훈련이 법규에 따라 통상 1년에 1회에 그치고, 할당된 역할이 구분되어 실제 비상 상황에서는 비실용적이라는 것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고정된 역할 기반 대응은 종종 효율성보다는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명하다. 그 결과 실제 비상상황에서 자위소방대는 의도한 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일본은 지진이 잦아 구조물 붕괴 위험이 있어 즉각적인 민간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위소방대의 역할이 크고, 광대한 지리적 위치를 가진 미국은 공설 소방대가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역 민간 소방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은 지리적 영역이 좁고 국가 소방력이 매우 발달되어 있어 비상상황에 대한 처방도 달라야 한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자위소방대를 폐지하고 효과적인 초기대응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자위소방대를 방재실 뿐만 아니라 단위 수준에서도 초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무실이나 시설의 모든 인력이 화재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필수적이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은 화재통보, 초기소화와 피난유도 등 절차에 능통해야 한다. 엄격하게 부여된 역할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훈련은 반복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실제 화재 상황을 반영하여 시나리오 기반의 일상적 훈련 보다는 다양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실시하여야 한다.

종이에만 존재하는 자위소방대는 실제 화재를 막을 수 없다. 자위소방대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이를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건물 재실자에게 “자위소방대가 있으니 안전하겠지”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어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할 수 도 있다. 

 

실제 화재상황에서 입증된 성공 사례가 없는 유령 조직에 집착하는 대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즉시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초기대응체계’의 틀을 수립해야 한다. 최소한의 법규만 준수하려는 우리나라 안전의식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시급하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반세기를 넘게 왔다.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백번 양보해도 자위소방대는 ‘불편한 진실(The elephant in the room)’ 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