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을 받는 편법으로 전락하다

    현경병, 할말은 한다 / 시민일보 / 2023-03-09 13: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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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병 전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면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출마 예정자들이 개최하는 출판기념회를 둘러싸고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출판기념회를 통한 책값 명목으로 후원금을 얼마든지 편하고 자유롭게 거둬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모금 한도가 없고 수입 내역을 신고·공개할 필요도 없다. 연간 한도 1억5000만원인 후원금에 해당하지 않아 선거관리위원회에 내역을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보니 현역 의원들의 경우 효과적인 모금 방법으로 계속해서 활용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오랜 종양이라거나 부패고리로까지 비난받고 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부패 정치인 프레임을 씌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말을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161표로 부결되었는데, 당시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3억원 현금 다발이 발견된 것에 대해 “2020년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후원금”이라고 해명하며 새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실 한국 정치의 부정부패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현실적 주제이다. 반부패운동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최근 발표한 나라별 부패인식지수(CPI) 조사에서 OECD 38개 회원국 중에 22위였다. 그만큼 투명성 제고는 우리가 선진 민주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국가 과제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투명성이 결여된 대표적 사례이자 정치자금의 모금 창구로 악용되는 방식으로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꼽힌다.


    많은 경우 자신을 둘러싼 신변 잡기 수준의 형편없는 책을 출간하고는 정가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제공받는다. 재력이 있는 주변인들은 책을 사주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는데 달랑 책 값만 낼 수도 없다. 50~100권 이상 사는 경우도 있다. 통상 책값으로 내는 돈을 넣는 모금함을 두고 흰 봉투를 받는다. 경조사로 구분되어 규제도 받지 않는다. 현행법상 선거일 전 90일부터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다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얼마를 받았는지 공개할 의무가 없다 보니 정치 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책을 팔아 책값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편법 모금인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심각해진다. 책값을 제공한 사람과 받은 정치인 간의 비리 관계가 형성되면서 나름의 대가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다보면 책값을 받은 정치인이 부정부패의 사슬에 얽매인 채 국정과 예산마저 망가뜨린다. 한국 사회의 투명성까지 한참 후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서 출판기념회 문제를 놓고 제대로 규제할 수 있는 법으로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법의 사각지대가 되어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 차원에서 아예 제도의 폐지까지 검토하기도 했다. 책값 이외의 어떠한 금품도 받지 못하게 정가보다 많이 챙기는 것 자체의 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선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2014년부터 6차례의 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다가 폐기되었고, 마지막 법 개정 발의는 2018년이었고, 21대 국회에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고 정치를 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정치적 현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마저 막아버리면 본인의 재력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선거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거의 없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에게 후원금이 법정 한도까지 들어올 가능성도 낮다. 결국 많은 출마자들이 검은 돈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할 것이다. 총선 과정은 물론이고 그 이후 여러 당선자들이 조사와 수사를 받거나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 당선무효형을 받고 의원직을 잃을 것이다.


    평소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보통 때 후원금 상한액이 1억5000만원이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가능한데, 다른 모든 외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너무 적은 편이다. 무엇보다 법적 한도와 규제 사항이 많다. 그 한도를 채우는 의원들도 그다지 많지 않고, 한도를 채워도 매월로 나눠 보면 1250만원 정도인데 지역구 사무실 임대료·관리비, 인건비, 사무비용 등에 나가는 고정비용으로도 빠듯한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아무리 절약해도 이 한도에서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또 출판기념회마저 막으면 더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정치인이 후원금을 모을 수 없거나 힘들게 되어 있는 풍토도 고쳐야 마땅하다. 자꾸만 막으려고만 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설령 아무리 막아본들 비리가 낳는 악순환이 정치 생태계에 또아리를 튼 채 존속할 것이다. 궁극적인 해결방안으로는 부정한 돈을 건네지도 받을 필요도 없는 정치자금의 조성과 사용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막으니 뇌물 수수가 이루어지고, 그마저도 어려운 형편에서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 조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성행하는 것도 선거자금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가진 부자들만 정치를 하라는 지침과 비슷해졌다. 실제로 21대 국회의원의 재산은 평균 21.8억원에 이르러 의원 1인당 20억원이 넘는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의원보다 수 배, 수십 배가 많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어려워진다.


    사실 전 세계 거의 모든 민주국가들은 정치 자금의 조성을 놓고 상당한 수준으로 제도적 보장을 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 주요국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한다. 선거를 포함한 적정한 활동을 위한 정치자금 조성을 허용한다. 특히 후원금 조성을 편하게 허용하고 원하는 액수를 걷도록 둔다. 그러다보니 선거부정과 사법처리가 아예 없다시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정치인이 정치 활동과 선거에 필요한 자금을 쉽고 편하게 조성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하루빠리 불법을 반드시 저지르게 만드는 정치·선거 자금의 사각지대를 양지로 옮겨 맑고 투명한 정치문화가 확립되도록 이끌어야 맞는다. 이게 정상적인 접근 방법이자 해결 방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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