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고 참담한 국가 전산망 마비, 신속 복구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칼럼 / 시민일보 / 2025-09-29 1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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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국가 핵심 전산 시스템을 총괄하는 대한민국 행정전산망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NIRS │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국가 행정업무 시스템과 인터넷 민원 서비스 등이 마비되는 초유의 재난 사태가 발생했다. 화재 예방 차원에서 배터리 이전 작업을 하다가 불이 났는데, 국가 전산망을 보호하는 백업 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정보기술(IT) 강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이 무슨 어이없고 황당한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도저히 납득(納得)하기 어렵다. 2022년 10월 15일 오후 3시 19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에서 비롯 ‘카카오 먹통’ 사태 때 재발 방지 대책을 강력히 요구했던 정부가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 사고는 지난 9월 26일 오후 8시 20분께 유성구 화암동에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5층 전산실에서 UPS(무정전 전원장치) 배터리 교체하는 작업 중 서버를 보호하기 위해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산실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해 경상자 1명이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완전 진압 후 조사할 예정이다. 유관 기관을 포함해 91명, 장비 31대가 동원됐다. 내부에 리튬이온 배터리팩 192개가 타고 있는 화재였고,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라 진화 과정에 2차 수손(水損) 피해가 없도록 화재를 진압하느라 상당히 어려움이 컸다, 불은 9월 27일 오전 6시 30분경 큰 불길이 잡았고 오후 6시경 화재 발생 22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되었으나, 정부24·국민비서·인터넷우체국 등 국민이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한때 중단됐다. 불길이 전산실로 번지면서 항온항습 장치가 멈추게 되자 서버 과열 우려가 커졌고, 국정자원은 피해 확산을 막겠다며 전원을 차단했다. 3년 전 네트워크 장비 불량으로 행정망이 마비된 데 이어 이번에는 화재로 행정 서비스가 올스톱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처하는 디지털 정부의 국가 전산망 관리가 참담할 뿐이다. 특히 데이터가 실시간 백업되는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가 손실된 시스템은 복구가 언제 될지 장담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배터리는 내구연한(10년)을 1년이나 넘긴 상태였다. 또 배터리를 장치에서 분리할 때는 전원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지켰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국가 전산망의 심장부를 소홀히 다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이중적 태도다. 정부는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 시스템은)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꺼번에 소실될 경우, 실시간 백업된 자료로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쳤다. 카카오 쪽에 핵심 서버의 분산 운영과 화재 방지 장치 등 부대 시설의 이중화를 강력히 요구했었다. 그러나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카카오 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제 서야 “예산 부족으로 이중화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고 핑계를 댄다. 충남 공주에 백업 센터를 짓고도 ‘셧다운(Shutdown)’을 막을 수 있는 ‘운영 시스템 백업 기능’은 구축되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개탄(慨嘆)스럽기 그지없다.

    피해 범위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정부24, 무인민원발급기, 모바일 주민등록증 등 일상과 직결된 서비스가 멈췄다. 복지 서비스 신청, 화장장 예약, 교통 할인 인증, 우체국 결제, 부동산 거래 신고도 차질을 빚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불법 주정차 단속을 수기로 처리하는 촌극까지 겪었다. 국가 전산망은 국민 생활을 떠받치는 ‘디지털 혈관’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정부의 행정 신뢰와 국가 안보까지 위협하는 초대형 재난사고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3년 전 대규모 마비를 겪은 뒤 정보시스템 장애를 ‘사회적 재난’ 유형에 포함하고 복구 체계 정비를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공공기관 시스템을 2~3시간 내 복구하도록 지침까지 마련했으나 현실은 무방비로 선명하게 나타났다. 데이터센터 이중화와 재해 복구 체계가 미흡해 피해가 증폭된 것이 다시 한번 현실로 확인해 준 셈이다. 서버 복구 환경은 마련했으나 클라우드 이중화는 미완성이었고, 지역 간 대비 체계도 예산과 실행 지연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3년 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민간 기업에 강도 높은 보완책을 요구했으면서 정작 정부 스스로는 관리 부실을 방치(放置)하고 방기(放棄)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는 신속하게 피해 복구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정치권도 힘을 합쳐야 한다. 국가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소아적 정쟁보다는 대승적 위기 극복이 먼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 9월 28일 화재 현장을 찾아 서로 “네 탓” 공방만 했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나 정치권이나 한심스러운 건 중국 전국 시대의 철인(哲人)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편에 나오는 고사(故事)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에 불과 하다. 국민의 피해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 복구를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고 근본적인 해법 마련에도 속도를 내길 바란다. 무엇보다 차제에 정부의 보안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전수 점검해야만 한다. 우선, 집중화된 서버의 한계가 이번 사태를 더욱 키운 건 아닌지 면밀하고 촘촘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전산실 7번 방 하나에 96개의 정부 시스템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이번 대규모 장애의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내세워 시스템을 통합하려는 행정 판단은 여러 부처에 관행처럼 널리 퍼져 있다. 이러다 보니 예산 확보와 집행 과정에서도 보안 관련 분야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편이다.

    정부 전산망이 멈추면 곧 정부 기능이 멈추게 되고, 이는 단순한 장애가 아니라 국가 기능이 원천 마비되어 결국 국격과 국가 경영의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게 된다. 기본적 안전조차 확보하지 못하면서 디지털 정부를 논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우리 속담에‘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망우보뢰(亡牛補牢)’나 ‘실우치구(失牛治廏)’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장비뿐 아니라 냉각·화재 방지·전력 공급 등 부대 시설과 설비까지 전면 이중화하고, 백업 데이터가 즉시 가동되도록 복구 체계를 서둘러 재설계해야만 한다. 중국의 사자성어에는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라는 ‘망양보뢰(亡羊補牢)’가 있다. ‘망우보뢰(亡牛補牢)’는 일이 잘못된 뒤에 손을 써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전 준비’의 중요성에 의미가 있고,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양을 잃은 후에라도 우리를 제대로 고치면 된다는 ‘사후 대응’의 중요성에 방점을 뒀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도 눈가림식 임시방편(臨時方便)의 미봉책(彌縫策)으로 사태를 수습한다면 다음에는 국가 기능 전체가 멈출 수 있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犯)할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하고 피해 복구에 국가역량을 총력 집주(集注)해 최선을 다할 것은 물론, 재발 방지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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