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수 회화전 ‘어렸던 왕자’가 오는 7일까지 서울 공평동 공평아트센터 2층에서 열린다.
안경수의 작품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음습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어둡고 퀭한 얼굴로 깁스를 하고 있는 ‘어렸던 왕자’가 등장한다.
작가는 깁스를 ‘무엇인가에 의한 거치적거림’ 혹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일부분’, ‘부자연스러운 얽매임’이라고 말한다. 즉 깁스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신체, 혹은 정신의 부자유를 야기하는 상징이다.
원작 속 어린왕자가 동심에서 찾고자 하는 꿈을 상징한다면 안경수의 ‘어렸던 왕자’는 좌절된 희망, 혹은 망실된 이상을 의미한다.
어린왕자가 이 세상과 삶에 새로운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다운 관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깁스를 한 왕자는 현실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이를 인정하고 용인하는 것 또한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무수한 물리적, 정신적 충격과 상처 속에서도 삶은 지탱되고 성장한다. 그러나 성장에 따라 희망과 이상은 점차 희미해지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본 일상에서 우리는 ‘어린왕자’가 아닌 ‘어렸던 왕자’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는 꿈과 희망이나 사랑, 혹은 선(善)과 같은 가치들은 그저 향수와 추억으로 자리할 뿐이라는 자조적 의미가 강하게 스며있다.
이와 동시에 작가는 현실의 부조화 속에서 쉽게 잊혀져가는 어린 시절 동심과 꿈을 그리워하며 삶에 대한 진지하고 건강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진실된 것은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상대방을 길들이고 사귀고 둘 만의 역사를 쌓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작은 것이 쌓여 온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라는 어린왕자의 독백처럼.
I can’t make anything
안경수의 작품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음습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어둡고 퀭한 얼굴로 깁스를 하고 있는 ‘어렸던 왕자’가 등장한다.
작가는 깁스를 ‘무엇인가에 의한 거치적거림’ 혹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일부분’, ‘부자연스러운 얽매임’이라고 말한다. 즉 깁스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신체, 혹은 정신의 부자유를 야기하는 상징이다.
원작 속 어린왕자가 동심에서 찾고자 하는 꿈을 상징한다면 안경수의 ‘어렸던 왕자’는 좌절된 희망, 혹은 망실된 이상을 의미한다.
어린왕자가 이 세상과 삶에 새로운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다운 관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깁스를 한 왕자는 현실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이를 인정하고 용인하는 것 또한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무수한 물리적, 정신적 충격과 상처 속에서도 삶은 지탱되고 성장한다. 그러나 성장에 따라 희망과 이상은 점차 희미해지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본 일상에서 우리는 ‘어린왕자’가 아닌 ‘어렸던 왕자’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는 꿈과 희망이나 사랑, 혹은 선(善)과 같은 가치들은 그저 향수와 추억으로 자리할 뿐이라는 자조적 의미가 강하게 스며있다.
이와 동시에 작가는 현실의 부조화 속에서 쉽게 잊혀져가는 어린 시절 동심과 꿈을 그리워하며 삶에 대한 진지하고 건강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진실된 것은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상대방을 길들이고 사귀고 둘 만의 역사를 쌓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작은 것이 쌓여 온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라는 어린왕자의 독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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