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형준, 산문집 ‘아름다움에 허기지다’ 발간

    문화 / 시민일보 / 2007-02-07 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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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는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순간 자기 삶의 평범성이 한자락 묻히는 것


    ‘아름다움에 허기져서’시를 쓰는 시인 박형준(41)씨의 산문 29편이다. 개인사, 시와 시인론, 작품 분석, 계간평 등이다.

    그에게 시인은 ‘미궁을 향해 나아가는 자’다. 세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음악을 팔지 않는다. 어떠한 형벌에 처해지더라도 신의 영역인 세계의 비밀과 대결하는 자다. 죽는 순간까지 쓸쓸하더라도 시를 생각해야 시인이다.

    “시인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말한다. 너무나 사소한 존재여서 세상에 난무하는 온갖 말 속에서 그들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들리지 않음, 이 들끓는 침묵에의 헌신이 세상의 소란을 가라앉힌다. 나는 이러한 시인을 아버지에게서 보았다. 그래서 이 책은 또한 내 주변의 사소한 이야기에 해당한다.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많은 부분 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내게 만들어준 밀가루떡. 이스트만 넣고 부풀린 떡에서는 술냄새 비슷한 것만 나고 아무 맛도 없었다. 점심 무렵 동구의 밭에서 일하다 돌아온 아버지는 부엌에서 달그락대다 숭숭 구멍 뚫린 떡을 쟁반에 얹어 방바닥에 엎드려 공부를 하는 내 옆에 슬쩍 밀어놓곤 나가셨다.

    어떨 때는 머리맡에 떡을 놓아두고 나는 잠이 들곤 하였다. 고요한 대낮, 천장에서는 쥐가 달그락대는 소리. 아버지는 참 말씀이 없으셨다. 마당에 낙엽이 내리면 낙엽을 쓸고, 새벽에 일어나시면 서둘러 밥을 먹고 밭에 나가 낙엽 같은 채소를 길렀다.

    아버지가 기른 채소는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수도 돈이 될 수도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는, 그저 아버지의 삶이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당신만의 증거였다. 아버지는 내게 그 맛없는 떡 한조각을 남겨주고 세상을 뜨셨다. 유년시절 머리맡에 놓여 있던 그 밀가루떡. 그때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았던 무미한 떡 한조각이 시(詩)라는 생각이 든다. 낙엽 같지만 헛되고 아름다웠던 아버지의 노동. 그 빈궁은 너무나 절실해서 말이 되지 못하고, 그 침묵의 안쪽에 들끓는 가족애는 어린 막내 옆에 가만히 놓아둔 밀가루떡이 되었다. 앞으로 맛없는 시를 세상 한편에 부끄럽게 놓아두고 싶다. 시는 그런 ‘별식(別食)’이다.”

    박씨는 남들의 시도 재조명한다. 사적 행보 탓에 역사적 단죄의 대상이 될는지는 몰라도 미당(未堂) 서정주의 시는 신앙에 가까운 시적 자의식이 투영된 수작이라고 평가한다. 이시영의 시 ‘나를 그리다’에서 시인의 애잔한 자화상을 포착, ‘그리다 만 미소 자국’이라는 성찰을 이끌어낸다. 나희덕의 시는 ‘부서진 날개 울음소리’로 읽힌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

    “표현이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둘 수 없다(語不驚人死不休)고 한 두보(杜甫)의 시 구절은 시인들의 작시(作詩)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두보의 많은 시가 개성적인 수사에만 골몰했던 것은 아니다. 불문학을 전공한 어느 선생님에게 ‘제니’(g&eacu te;nie)라는 단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보통 천재성이라고 옮기는데 그것보다 더 많은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불문학에 문외한이니 잘은 모르지만 어쩐지 후자가 더 삶의 깊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분명 시에는 천재성만으로는 안되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언제나 최상의 이미지에 도달하려는 찰나 실패하고 마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완벽한 연금술적 상태에 도달하려는 순간 자기 삶의 평범성이 한자락 묻히고 마는 잡티 섞인 보석과 같은 것, 그게 시이다. 나는 그래서 시인들의 시를 들여다보며 거꾸로 아직 가공되지 않은 삶을 만난다.

    좋은 시는 개성적인 표현 밑에 정말로 무궁무진하게(!) 시인의 비애를 감춘다. 한편의 시에서 텍스트로 완성되기 이전의, 오히려 충만한 ‘시적인 상태’와 만났을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신기(新奇)를 쫓으려 한, 아무리 놀라운 표현으로 감추려 해도 그 속에서 슬며시 흘러나오는 시인의 눈물. 시인은 제 자신의 작고 사소한 감정으로 세계를 앓으려 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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