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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지금 학령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고(波高) 앞에 서 있다. 2026학년도 대학 신입생이 될 2007년생은 약 49만 6천 명으로 2025학년도보다는 다소 많지만, 이후 감소세는 피할 수 없다.
2034학년도까지는 44만 명 선을 유지하다가 2035년에는 40만 명, 2036년에는 35만 명대로 추락한다. 이는 불과 10여 년 뒤, 상당수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원서접수 창구만 열어도 정원이 초과될 정도로 입학생 자원이 풍부했다. 당시에는 대학 구성원들이 교육만 충실히 하면 되는 시절이었다.
지금까지 일부 서울 소재 대학은 비교적 안정적인 입학생 수를 유지해 왔기에, 교수자들 사이에서도 위기에 대한 실감이 덜한 편이다. 학생 충원에 대한 걱정보다는 일상적인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학령인구 감소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이며, 그 여파는 결국 모든 대학으로 확산될 것이다. 지금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일수록, 더 빠른 혁신이 필요하다.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환경에서 대학이 생존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기준은 ‘얼마나 매력적인 교육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 결국 답은 교육의 질이며, 이를 결정짓는 핵심 주체는 교수자다. 교수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교육의 맛집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 이 수업은 꼭 듣고 싶다”는 기대감을 주고 졸업 후에도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교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 교수자들은 “내 과목은 원래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그러면 교육은 그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린다. 학생들 중에는 고등학교 시절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교수자의 세심한 관심을 기다린다.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추고, 성취감을 맛보게 할 때 학생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한 명의 학생이 수업에 몰입하게 되는 경험은 단순한 교실 분위기를 넘어, 학과와 대학 전체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교수자의 혁신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교재를 설명하기 바쁜 강의가 아니라, 학생이 참여하고 탐구하는 수업을 설계하는 데서 출발한다. 교육의 수요자는 학생이다. 학생이 듣고 싶어 하고, 사회에 나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할 때 강의는 살아난다. 결국 교수자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단지 시수를 채우는 급여교수인가?, 아니면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사명감 교수인가.? 후자의 태도만이 대학의 미래를 열 수 있다.
내부 혁신은 개별 강의실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학과와 대학 차원의 체계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과와 대학의 강점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실제로 의정부 소재 K대학교 A학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학과는 신입생 정원 120명 중 약 20명이 타 대학 자퇴생이나 학내 전과생으로 채워졌다. 이는 단순히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만을 대상으로 한 충원 전략이 한계(限界)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대학의 잠재적 수요층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전공이 맞지 않아 다시 도전하는 청년층, 첫 진학에서 실패 경험을 겪은 학생, 직업 전환을 준비하는 성인학습자 모두가 대학의 중요한 고객이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입학 기회가 아니라, 재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다.
따라서 대학은 차별화된 커리큘럼, 촘촘한 학사 관리, 진로 상담과 멘토링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홈페이지와 SNS 같은 온라인 채널뿐 아니라, 지역사회 네트워크·산업체 협력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를 명확히 전달할 때, 대학은 더 넓은 충원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내부 노력만으로는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학령인구 감소는 구조적 문제이기에 외부와의 연계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국내 대학들이 최근 집중하는 두 축은 성인학습자와 외국인 유학생이다. 평생교육 시장을 겨냥한 과정 개설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 해외 유학생 유치 역시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전략들은 교육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단기적으로 숫자를 메우는데 성공하더라도 질이 낮은 교육은 평판을 악화시키고 결국 더 큰 위기를 불러온다. 내부 혁신이 선행될 때만 외부 전략도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
해외 대학들의 전략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참고가 된다. 미국과 유럽 대학들은 단기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 과정을 통해 직장인과 경력 전환자를 유치하고, 이를 정규 학위 과정과 연계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일본은 지방대학의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 산업과 연계된 학과 개편을 장려하고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을 확대한다. 우리나라 대학 역시 지역 산업과 긴밀히 연결된 융합 학과를 설계해 지역 발전의 허브로 기능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분명하다. 내부의 혁신이 선행되지 않으면 외부 전략도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성인학습자 과정이든, 외국인 유학생 유치든, 지역 연계 학과든, 그 성공 여부는 결국 교수자가 얼마나 교육의 질을 높이는가에 달려 있다. 대학의 생존을 위한 모든 전략은 교실 안에서 출발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그러나 백년의 비전은 오늘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교수자와 대학 구성원 모두가 학생에게 “나는 이 학교에 오길 참 잘했다”는 확신을 주는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이 살 길이고, 국가 발전을 위한 토대다. 교수자의 혁신 없이는 대학의 미래도 없다. 그리고 내부가 변할 때 외부 협력도 비로소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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